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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พื้นที่ > คอลัมน์ > 김해성의 빰맞기 - 경기일보

    김해성의 빰맞기 - 경기일보
    Admin     2008/01/28 9:11 am

 

어깨에 책보를 둘러매고 운동화 대신 털신을 신은 시골 촌뜨기가 1972년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서울에 올라왔다. 커다란 운동장, 현대식 학교 건물, 아이들의 세련된 모습. 무수한 차들이 오고가는 ‘서울’은 나를 주눅들게 했다. 전학 후 첫 등교 날, 책을 둘둘 만 책보를 어깨에 매고 학교에 온 나의 모습을 본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옆구리를 찔러가며 소곤대기 시작했다.

  “소풍 왔냐?” “책가방은 어디 두고 보자기로 싸가지고 왔네!”

책보를 툭툭 치면서 아이들은 놀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골에서는 책을 보자기에 싸서 남학생들은 어깨에, 여학생들은 허리에 둘러메고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왜 놀리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 분위기에 압도돼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억울하고 화도 났지만 한마디 항변 할 용기조차 낼 수 없었다.

  항상 풀이 죽어있는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친구도 없었을 뿐더러 나 역시 먼저 누군가에게 말을 붙인다거나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 친구들이 모여 소근대고 장난치는 시간이 두려웠고 점심시간에도 혼자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 그 시간이 두려웠다. 그나마 수업 시간이 되어야만 마음을 놓곤 했던 어느 날, 그날따라 교실에 들어온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을 주욱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때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나는 당황해서  얼른 고개를 숙였다.  

  “김해성! 일어나서 국어책 72페이지 읽어봐라”

 나는 어쩌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일어섰고 반 분위기는 일제히 싸늘해졌다. 간신히 첫 줄을 읽었다. 그런데 “...했습니다.” 하자 몇몇이 “했습니다~”를 따라하는 것이었다. 놀림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생님의 지시인지라 읽기를 계속했다. “...했습니다.” 하자마자 이번엔 모든 아이들이 합세해서 “했습니다~”라며 사투리가 섞인 내 말투를 흉내내는 것이었다. 끝내는 웃음보가 터지고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조용조용! 김해성! 똑바르게 큰소리로 읽지 못해?”

  선생님의 불호령으로 소란은 잠시 주춤해졌고 나는 다시 책 읽기를 시작했지만 당황해서인지 사투리의 억양과 발음을 조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점점 커져 나의 귓가를 맴돌았고 선생님의 호통은 나를 주눅 들게 하다못해 다리 힘이 풀리게 만들었다. 급기야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때 선생님은 나를 앞으로 불러내었고, 이내 반장도 불려 나왔다. 

  “김해성! 지금 뭘 잘했다고 눈물 바람이야?” “반장! 김해성의 뺨을 세 대 때린다. 실시!”

담임선생님의 지시가 내려지자마자 반장은 잘 훈련된 셰퍼트처럼 망설임 없이 힘껏 내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철썩, 철썩, 철썩!’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얼굴은 손가락 자욱이 선명하게 남은 채 부풀어 올랐다. 뺨을 맞은 아픔도 아픔이지만 수업시간에 집단적으로 놀리며 장난을 친 아이들을 혼내기는커녕 거꾸로 놀림을 당하고 눈물 흘리는 시골아이를 불러내어 그것도 반장을 시켜 따귀를 때리는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억울함 때문에 터지는 울음을 누가 막으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나를 본 선생님은 다시 반장과 나를 나란히 불러내서는 아까보다 더 세게 때리라는 지시를 했다. 다시 뺨 세 대를 맞았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입술을 세게 물었다. 소리를 내어 울었다가는 다시 뺨을 맞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학교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이유도 모른 채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하고 절벽으로 내몰린 심정...

  어린 시절 여섯 대의 뺨을 얻어맞은 그 혹독한 경험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한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삶을 나누게 된 계기와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나라, 같은 민족안에서 시골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놀림을 당하고 뺨을 맞고, 고통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의 삶은 과연 어떠할까? 자신의 삶의 터전을 떠나온 이들은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 어설프고 어색한 한국어 발음과 억양 때문에 자신들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는 그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폭행과 욕설까지도 묵묵히 참아내야만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지금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리한 상황과 맞닥뜨려 좌절해야만 하고 울음을 삼켜야만 한다. 스스로에겐 떳떳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절망’이라는 낭떠러지에 서있기 일쑤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제 외국인체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다문화시대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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