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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경의 열매] 김해성(6) 1980년 민주화 시위서 쓰러져 -10.2
    Admin     2007/06/27 9:17 am

[역경의 열매] 김해성(6) 1980년 민주화 시위서 쓰러져
 
[국민일보 2006-10-02 15:14] 

한국신학대학의 1979학년도 신입생 50명 중엔 성결교 출신이 나 말고도 한 명 더 있었다. 그는 유동운이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의 신앙 성격은 판이했다. 나는 성결교 특유의 보수적이고 원칙적인 신앙을 고수한 반면 그는 자유분방하고 사회 참여적인 기질이 뚜렷했다. 유동운은 이미 고교 시절부터 긴급조치 위반으로 경찰서를 들락거릴 만큼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 활동을 했다. 또 예능적 감수성도 뛰어나 사람들을 끄는 매력도 대단했다. 그가 피아노를 치며 당시 유행했던 팝송인 ‘크레이지 러브’나 ‘그림자’를 부를 때면 그 열정적이고 진지한 모습에 주위 분위기가 숙연해지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의 자유분방한 기질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성격과 가치관이 전혀 달랐던 그와 나는 절친한 관계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결코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과 같은 관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가 내게 평생 잊지 못할 부채를 안겨 주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1979년 박정희 정권이 몰락하고 1980년에 들어서면서 민주화 요구는 더욱 거세어졌다. 5월이 되자 학생들도 매일이다시피 서울역 앞으로,시청 앞으로 나가 시위를 벌였다. 시국은 어수선했고 긴장감은 어느 때보다 고조됐다. 시청 앞 광장에서 전국 학생들이 연합 시위를 하기위해 줄지어 앉아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 뒤로 도착한 이화여대생들이 맨 바깥에 서게 되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경찰이 완전무장한 채 시위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집회가 시작될 무렵,경찰이 구호에 맞춰 요란한 군화발 소리를 내며 위협적으로 접근을 시작했다. 우리는 여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위대 바깥 쪽으로 자리를 바꿔 앉았다. 바로 그 직후 무지막지한 경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하늘에서는 최루탄 가루가 쏟아져내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최루탄 가루를 막기 위해 점퍼를 뒤집어 얼굴을 가렸다. 시위 대열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차마 여학생들의 등을 밟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경찰이 방망이로 내리치며 군화발로 차대는데도 그저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갑자기 뒷머리에 ‘쾅’하는 충격이 오면서 나는 최루탄 가루로 범벅이었다. 뒤통수에선 시뻘건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얼마간 더 버티며 밀고나갔으나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깨어나 보니 서울시청 앞 분수대 옆이었다. 간신히 일어나 분수대 물에 몸을 씻고 정신을 차려 보니 시위대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시위 학생들이 떨어뜨리고 간 신발,가방,책을 경찰들이 주워모아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온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목과 얼굴은 물론 머리카락 속에도 물집이 잡히고 뒤통수는 둥그런 반원 모양으로 찢어져 있었다. 결국 머리 전체가 한 꺼풀 허물을 벗게 되었고 동시에 내 나약함의 허물도 벗게 되었다.

며칠을 쉬고 다시 학교에 갔다. 전날의 치욕과 고통을 갚아 주려고 절치부심하다 생각해낸 것이 화염병이었다. 나는 서울역 시위에서 화염병의 위력을 익히 보아온 터였다. 당시 화염병 투척은 반공법으로 처벌을 받는 무거운 죄목이었기에 제조나 소지를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도 바치겠다는 각오로 학교 기숙사 뒷담 아래에서 화염병을 열심히 만들었다.

제조 후엔 산 속에 있는 검도 훈련장에서 투척 실험까지 마쳤다. ‘어쩌면 이것이 내 삶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의미심장한 각오까지 하고나니 불현듯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 부모님께 인사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집에 들러 하룻밤을 보냈다.

정리=박동수 편집위원 d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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